[책과 영화]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관하여 《 미 비포 유 》; 부제 live boldly ­

아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은 해석이 더 어렵다. 차라리 어려운 단어가 섞인 장문이 낫다. 모르는 단어만 사전에서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me, before, you. 세 단어로 이루어진 책의 제목을 헤아리려 애쓴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당신 ‘앞’의 나인지, 시간적인 의미에서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인지. 내가 모르는 ‘before’가 더 있는지 사전까지 찾아본다. 그러다 ‘you’가 아닌 ‘me’가 주어임을 깨닫는다. 결국 이 소설의 중심은 윌이 아닌 루이자에 있었음을 책(그것도 원서를!!!)을 2번이나 읽고, 영화를 4번가량 본 지금에서야 안다.​뭔가 오랜만에 엄청 괜찮은 영화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토요일 밤이었다. 리모컨을 돌리다가 내 취향을 아는, 감수성 제로의 공돌이 남편이 괜찮다고 해서 결국 보고야 말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영화가 그렇게까지 걸작이었나,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지, 대체 이유가 뭐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

책을 다 읽은 후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영화를 정말 잘 만들었구나’였다. 책을 읽는데 영화 장면이 오버랩되어 정말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가 문제 되지 않았다. 보통 영화가 책에 못 미치는 게 순리다. 플롯으로 가득찬 몇 백 장의 섬세하고 견고한 이야기를 2시간으로 압축해야 하는 게 영화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대사마저 책의 문장과 같아서 읽는 즉시 영화 장면이 눈에 보였다. 영화 끝날 때 보니 시나리오 작업을 작가인 조조 모예스가 했더라. 아주 드물게 각색된 부분이 있었지만 영화 분량을 생각하면 필요불가결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원작의 의미가 변색되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어서 바뀐 영화도, 원래의 책도 다 괜찮아 정말 세심하게 작업했구나 했다.​캐스팅도 완벽하다. 눈썹으로 표정을 만드는 루이자 역의 에밀라이 클라크와 목소리가 이지적이고 섹시한 윌 역의 샘 클라플린의 조합은 이 영화를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로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나 역시 결말 직전까지 내 타입의 남주인공(츤데레스럽고 웃을 때 귀엽기까지 한 엄청 지적인 이미지의 영국 악센트를 지닌 남자 배우)에 정신을 못 차리며 당연히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더랬다. 그런데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내가 알고 있던 존엄사는 식물인간과 직결된 그것으로 도덕 수업 시간에 찬반으로 떠들어댄 윤리적인 무엇이었다. 숨만 붙어 있는 사람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고 기계에 의존해 살아만 있는 사람에게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의존하는 기계를 제거하는 것은 살인 행위가 아닌가 등등. 어쨌거나 내가 사는 이 나라에서는 허용 안 되는 것이므로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그런데 윌처럼 quadriplegic(전신마비 환자, 원서만 몇 주일을 읽다 보면 한국어보다 영어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인 사람, 척수를 다쳐 가슴 아래부터 신체가 마비되어 육체는 온갖 물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으나 두뇌는 손상이 없어 정신 활동은 일반인과 동일한, 다시 말해 죽음이 무엇인지 명백히 아는 사람이 존엄사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일말의 호전될 희망 없이 매일 아침 죽었기를 바라며 깬다면?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죽기를 바라는 사람과 살기를 바라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이기적일까. 내 충격의 원인은 이 물음에 있었다. ​사고 직전 윌은 30대 초반의 대기업 CEO였다. 킬리만자로를 등반하고 스키를 다이내믹하게 타고 번지점프를 하며 세계를 여행하는, 심지어 잘생기고 몸매까지 완벽한 남자였다. 사고 이후 1년 동안은 이전의 윌처럼 엄청난 노력으로 물리치료에 임했다. 나아지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간신히 손가락 두 개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온갖 감염에 취약해진 몸이 폐렴에 걸린다. 2년 동안 4번의 폐렴이 찾아오고 의사와 윌 모두 조금도 나아질 수 없음에 동의한다. 존엄사의 조건에 윌이 해당되는 것이다.

윌의 존엄사 계획을 알게 된 루이자는 윌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트레이너 가의 재력을 이용해 무엇이든 하려 한다. 여행을 기획하며 윌에게 묻는다. 당신이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어딜 가겠어요? 여행 이야기를 꿈결처럼 듣던 루이자는 예전의 나로 파리에 있고 싶다는 윌의 말에 현실로 돌아온다. 윌에게 지금의 quadriplegic 윌은 윌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어떠한 타협점도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 타인의 삶으로 연명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므로 살아있어 달라고 한다면 이기적일까.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대조 속에서 정신과 육체 모두 고통스럽기만 한 삶이기에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기적일까. 대체 이기적인 게 무엇일까. 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느 쪽이 더 이기적인 걸까.​당신 곁에서 무엇이든 함께 하겠다는, 당신이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루이자의 말에 윌은 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내 곁에 묶어둘 수 없어요.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이 조금이라도 후회나 연민의 눈길로 날 쳐다보기를 원하지 않아요.

>

루이자는 도서관 공공안내 표지판이 바뀐 게 뉴스거리인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산다. 오래된 성이 주요 수입원인 관광도시는 성수기에는 유입된 여행자들로 활기를 띠지만 비수기에는 시간이 정체된다. 고향인 이곳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루이자는 (윌의 표현을 빌리자면) 휠체어에 앉아서 세월을 보내는 윌보다 더 따분한 하루를 보낸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TV 보고 펍에 가고 남자친구를 만난다. 별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하루에 만족하며 살았다. 6년간 일한 카페에서 잘리기 전까지는, 윌을 만나기 전까지는.​실직 상태인 대디, 가정주부인 맘이, 미혼모인 동생과 조카, 조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생활비는 루이자와 동생인 트리나의 몫이다. 취업센터에서 소개해 준 치킨 농장과 피부 관리실 등을 전전하며 절실하게 직업을 찾는다. 남자친구 패트릭은 이번 기회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한다. 올해­의 청년 사업가로 연속 뽑힌 패트릭은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노르웨이에서 보내자고 말하는 남자친구다.주변의 기대 혹은 바람과 달리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모르겠는 루이자는 마침내 직업을 구한다. 6개월 기간직으로 보수도 좋고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도 않는다. 간병인인 루이자가 요구받은 유일한 조건은 환자를 혼자 15분 이상 놔두지 않는 것이다.

윌은 네이선과 매일 물리치료를 한다. 근육이 더 경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지 더 좋아지기 위함이 아니다. 베프와 자신의 여자친구 결혼 통보를 휠체어에 앉아서 들을 수밖에 없는 윌은 부모님께 6개월의 유예를 약속받는다. 자신의 죽음을 보류하는 그 시간에 루이자를 만난다. 다정한 여자와 까칠한 남자는 로맨스 영화의 예상 가능한 전개대로 가까워지고 루이자는 엄청난 사람이었던 윌의 영향으로 자신의 취향과 능력을 탐험한다.​윌의 손목에 난 상처로 자살 시도를 어렴풋이 알게 된 루이자는 윌의 부모님 대화를 듣고야 만다. 스위스 병원에서 날아온 편지는 윌의 존엄사가 가능함을 알렸고, 윌의 결정을 존중하자는 아부지­와 막겠다는 어무이­ 사이에서 언쟁이 오간다. 아부지­는 고통스럽기만 한 아들이 행복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살아있는 동안 서포팅 해 주자고 한다. 어무이­는 명백히 살아있는 자식의 죽음에 일조할 수 없다.

>

Knowlede is Power. _by Will 윌이 생의 의지를 바랄 수 있게,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려는 루이자는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는다. 존엄사로 죽은 풋볼 선수의 기사도 읽는다. 뜨거운 감자로 찬반 의견이 팽팽한 그 기사에서 선수의 어머니는 말한다. 사고 이후 불행하기만 했던 아들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아찔해진 루이자는 quadriplegic인 사람에게 가능한 투어를 조사하고 여행을 계획한다. 윌의 확답에 희망적으로 여행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윌이 폐렴에 걸린다. 이제 약속한 6개월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루이자가 바꿨다고 생각한 윌의 결정은 그대로였다. 루이자를 사랑하기에 말과 행동이 달라졌을 뿐이다. 사랑하기에 루이자가 튜브를 교체하지 않아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음에도 티 내지 않고 참았을 뿐이다. 루이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6개월을 견디었을 뿐이다.

>

모리셔스에 가고 싶어졌다. 에메랄드빛 바다 보며 선베드에 누워 책 읽기, 약간의 수영하기, 리조트에서 그냥 쉬기, 스쿠버다이빙하기 등등. 아주아주 강렬하게, 대담하게 가고 싶다. Live boldly. 윌의 말을 떠올리며 비행기 표를 검색하다가 코로나를 생각한다. 어차피 못 간다. 돈이 있든 없든, 시간이 있든 없든 지금은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시대다. 다행으로 여기며 영화 ost를 검색한다. 분명 TV에서 엄청 많이 들어서 아는 노래인데 제목을 모른다. 제이슨 므라즈라고 생각하면서 찾는데 안 나온다. 간신히 찾고 보니 Ed Sheeran이었다.​처음으로 가사를 꼼꼼히 읽는데 첫 문장에 소름이 돋는다. ‘When your legs don’t work like they used to before-‘ 이건 윌 얘기잖아. 나머지 문장도 찬찬히 읽는다. 이보다 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노래는 없다. 윌의 전 여자친구인 엘리시아의 결혼식에서 윌과 루이자가 춤출 때 나오는 이 노래까지만 들으면, 함께 어디든 가자는 루이자의 말에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윌을 보면, 영화의 결말을 당연하게 꿈꾸게 된다.

>

Thinking out loud. 이 노래만 몇 주째 듣는다. 영화의 결말을 알면서 들어 비극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문장은 불가능해서, 몇몇 문장은 영화의 이야기 그대로여서 어느 쪽도 슬프다. 70살까지 윌과 루이자가 사랑할 수 없으겠나 매일 사랑에 빠질 수는 있다.

>